론 서바이버 - 미국의 영웅 이야기

 거대한 녹색 괴물이 미국을 구한다. 무개념 부자 도련님은 자기가 만든 파워 수트로 세상의 무기를 모두 없에겠다 울부짖고, 거미에 물려 초능력이 생긴 청년과 박쥐에 트라우마가 있는 남자도 종횡무진 악당들 잡기에 여념이 없다. 참 평화로운 나라다. 미국이란 나라는. 금요일 밤이면 극장에 앉아 팝콘을 씹으며 나라를 구하는 영웅들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껴야 할 정도니 말이다. 그런 영화에 열광하며 박스오피스 기록을 세우는데 일조했던 많은 사람들 중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그렇에 즐거워 할 동안 지구의 반대편에서 젊은 청년들이 그 평화를 위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되세길까? 미군 특수전 사상 최악의 희생자를 낸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의 실패한 작전을 그린 논픽션 론 서바이버는, 그래서, 죽어간 모든 미군 장병들을 위한 작은 헌정사다.
 

-교전 수칙, 미디어, 그리고 사람이라는 이름의 군인

 이라크에 있던 시절, 여느 때 처럼 근방의 부대로 보급작전을 나갔었다. 차량 점검을 위해 잠시 멈춘 보급단의 차량 근처를 한 이라크인 남자가 서성이고 있었다. 사방 5키로 이내로는 사람이 살지 않는 군 전용도로의 한 가운데에서 남자는 멀뚱히 선 채로 보급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원 몇명이 그를 제압하고 몸 수색을 시작했다. 그의 주머니에서는 5.56mm 탄피 두개가 발견되었다. 그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놓아줘야 했다. 불타는 사막 한가운데서 보급대를 관찰하는 남자였지만 그가 우리 보급단을 향해 적대감을 보인다는 증거도, 작전에 방해가 된다는 증거도 없었다. 그가 땅 속에 폭탄 한무더기를 파묻은 직후였을 수 도, 테러리스트들이 우리의 움직임을 감시하기위해 보낸 척후병이었을 수 도 있었다. 하지만 다국적군 서부지역 교전수칙에 의해 우리는 그를 그가 서있던 그자리에 세워둔 채 변을 보고도 닦지 않은 것 만 같은 찝찝함을 느끼며 보급단을 출발 시켰다.
 론 서바이버에서 네이비실 대원들의 작전이 꼬이기 시작한 것도 교전수칙에 따라 자신들의 위치를 탈레반에게 말할지도 모르는 양치기들을 풀어주면서 부터다. 풀려난 양치기들의 보고로 네명의 네이비실 대원들은 50배가 넘는 규모의 적에게 습격을 당하고 그에 맞선 초인적인 저항 끝에 세명의 대원이 생을 마감하고 만다. 그리고 그들을 구하기 위해 증원된 8명의 네이비실 대원들과 몇명의 육군 레스큐팀 대원을 태운 헬기가 RPG-Rocket Propelled Gradane, 에 맞아 추락, 탑승원 전원 사망이라는 결과를 낳으면서 탈레반 수뇌 인사를 암살하는게 목표였던 레드윙 작전은 특수부대 역사상 가장 큰 사망자를 낸 사건이 된다.  
 이 모든 사건은 자신들을 목격한 양치기들을 놓아주면서 시작되었다. 그들의 눈에서 명백한 적대감을 읽으면서도, 그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발각시킬 거라는걸 알면서도 네이비실의 대원들은 양치기들을 놓아줄 수 밖에 없었다. 비무장 상태의 민간인 학살을 금지하는 제네바 협약과 작전지역의 교전수칙, 그리고 민간인 학살 사실을 대서특필하고 그들을 살인자라고 몰아칠 미디어 때문에 말이다. 
 몇년 전, 이라크 중북부의 하디타 라는 도시에서 이라크전 최악의 민간인 학살 사건이 있었다. 테러범이 심어 놓은 폭탄에 해병대원 몇명이 목숨을 잃고, 남은 대원들은 테러범을 색출하기 위해 근처의 집들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 중 무고한 민간인들이 테러범으로 오인되어 사살된 사건이었다.
 사건에 직접적으로 연루되었던 해병대원들과 그들의 지휘관들이 차례로 살인죄 및 사건 후의 부실한 조사 상태를 이유로 기소되었다. 하지만 당시 3성 장군으로 그 지역의 총 책임자였던 매티스 장군(4성)은  대부분의 기소자들을 사령관 특권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군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몰고 왔던 이 결정엔 매티스 장군이 발표한 공식 문건에 그려진대로 현재 이라크/아프간 전쟁은 "도덕적으로 멍든 전쟁" (Morally bruising war)이라는 그의 철학이 크게 작용했다. 적과 아군이 분명히 구분되고 전선이라는 개념이 명확하게 적용되는 전통적인 전쟁의 정의를 현대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찾을 수 가 없고, 적과 아군, 무고한 시민이 한데 뒤섞이고, 그들 사이의 아군을 향한 적개심을 구분지을 유일한 잣대가 전투를 행하는 각각의 장병들에게 있는 만큼 그들의 판단이, 비록 그 결과가 비도덕적인 결과를 초래 했더라도, 보호되어야 한다는게 매티스 장군의 결론이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의 힌두 쿠시 산맥 위에서 네명의 특수부대 전투요원들이 내린 결정은 너무나도 도덕적이고 인도주의적이었기에 그 대가는 그들의 목숨이었다.
 참으로 불공평한 세상이다. 기름이니, 대량 학살 무기니 나는 모른다. 다른 나라들이 욕을 해도 나는 상관 없다. 전쟁은 미국이 시작했고, 그건 바로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였다. 전 세계의 테러범들을 한데 모아 9/11 이후의 전세계에서 일어난 테러의 2/3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국경 안으로 격리 시키고, 9/11 이후 테러 사망자의 90%를 책임지며 대신 죽어주고 있다. 적어도 이 점에서 만큼은 테러와의 전쟁이 생산적인 활동이 된다. 많은 동료들이 그렇게 생산적으로 죽어갔다. 자신이 지키는 미국인들이 만든 교전 수칙을 지키고, 자신이 지키는 미국인들의 쓴소리를 걱정하면서 말이다.  


-미국의 영웅

 살아남은 자들은 언제나 말한다. 진정한 영웅은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이 책의 저자는 이 작전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미 해군 네이비실 중사 마커스 러셀이다. 양치기들을 죽일지 살릴지 결정하는 다수결에서 그들을 살리는데 마지막 표를 던진 그는 그의 동료들에게 일어난 사태가 자신의 결정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것이라 괴로워 한다. 고독한 생존자 라는 책의 제목은 그렇게 지어진 것일게다.
 저자가 온몸으로 체험한 경험으로 그려진 처절했던 상황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가슴이 찢어지고 눈물이 앞을 가리도록 슬프다. 그곳엔 총알을 막아주는 방탄복도, 마하의 속도로 날면서도 최상의 음질을 제공하는 무전도구도 없다. 팀의 리더인 마이클 머피 대위는 본부와의 교신을 위해 빗발치는 총알을 뚫고 전파가 잘 잡히는 평지로 나가 증원을 요청하고 테러범의 총알에 난자당한 채 죽어간다. 특수부대원이자 의무병인 저자는 전투중 의료기구가 담긴 가방을 잃어버려 자신의 손 안에서 동료가 죽어가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 가 없다. 개같이 처절한 전쟁터의 현실이다.
 이라크에서 매일같이 작전을 나가며 만일의 사태가 발생했을 경우를 상상하며 얼마나 가슴 졸였던가. 하물며 이 책에는 내가 상상했었던 그 어떤 상황보다도 나쁜 최악의 상황들이 연이어 벌어진다. 그리고 그 참담한 현실속에 던져진 미국의 영웅들의 이야기가 담담하게 그려지고 있다. 
 미국의 영웅. 나는 이 책의 주인공들을 미국의 영웅이라 부르고 싶다. 그들이 지킨 나라, 그들이 목숨을 희생하며 지켜낸 나라는 미국이니까 말이다. 녹색 괴물도, 개념상실 초딩 부자도, 가난에 찌든 거미인간도, 박쥐가 무서운 백만장자도 이들 앞에서는 영웅이라 불리기 부끄럽다. 자신의 나라, 자신이 믿는 바를 위해 말없이 죽어간 이들이야 말로 진정한 영웅이다 그에 앞서 죽어간 수많은 장병들과 같이. 여기저기 영웅 이야기가 판을 치는 세상. 그러면서도 진정한 영웅들의 이야기는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세상.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이 더욱 씁쓸하게 다가온다.

by 단수 | 2008/06/16 09:18 | -출판물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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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통큰아이 at 2008/06/16 09:42
참 이럴 때마다,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드네요. 슬픕니다.
저도 언제나 출동 나갈때마다 (특히 여름철에) 이번 출동도 무사히.. 하면서 보냈습니다.
Commented by 01 at 2008/08/21 23:45
영국군 이야기인 줄 알았네요. 영화 '브라보투제로'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스커드 미사일로 공습 유도를 위한 SAS팀이 이야기죠.
그 팀에서도 의무병이 킷트를 버리던가 어쨌던가 하지요.
영화에서 양치기가 꼬맹이 소년으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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