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1월 26일
순정만화

제대하고 나와서 연아를 보기 전까지 나는 이연희빠였다. 그녀를 알게 된 계기도 참 희한해서 더 질긴 인연으로 다가왔던 이유도 있는 것 같은데(음 마치 알고 지내는 사이처럼 말하는군), 이연희를 처음 알게 된 건 이라크에서였다. 현지인들이 부대안에 들어와 차린 가게, 불법 DVD, 중국산 짜가 아이팟 등의 전자제품에 짜가 롤렉스, 브라이틀링 완전자동시계까지 파는 그런 가게에서 최신 디비디 목록을 구경하던 중 낯익은 문자가 내 시선을 잡았다. 한글이었다. 그것은 한국 영화 몇개를 모아 놓은 디비디의 표지로, 조잡하게 프린트 된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의 포스터 위로 몇가지 작품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연리지, 홀리데이 등의 한국영화와 정체 불명의 유럽영화 몇개가 함께 들어있었는데 그 중엔 백만장자의 첫사랑이라는 이건 또 뭔가 싶은 영화제목도 같이 적혀있었다.

그냥 한국어가 듣고 싶었고, 한국 여자가 보고 싶었고, 한국 영화가 보고 싶었기에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 DVD를 구매해서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디비디 안에 든 영화를 하나씩 감상했다. 물론 백만장자의 첫사랑은 제목에서부터 풍겨나오는 유치할 것 같은 포스에 미루고 미루어 마지막으로 감상하게 되었는데, 아뿔사...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같은 영화를 몇번이고 돌려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결할 수 있었다. 이라크의 땡볕 아래서 남자들과, 남자가 아닐까 의심되는 여자들 사이에서 여신을 보았으니 연기실력이고, 스토리고 뭐고 다 필요 없었다. 닥치고 이연희였다.
물론 이라크에서 돌아오고 말년즈음 부터 한국 소식 들으면서 김연아라는, 존재 자체가 우주의 법칙에 어긋나는게 아닌가 싶은 사람에게 푹 빠져버려서 뒷자리로 밀려났지만, 그래도 여전히 좋았다. 영화 내 사랑에서 귀엽게 노래 부르는 모습도 좋았고, 연기 논란으로 여기저기 플짤이 나돌때도 내 눈에는 귀엽게만 보였다.
그래서 순정만화의 영화화에서 수정이역에 캐스팅 되었다는 소식은 참 반갑게 들려왔다. 이미 백만장자의 첫사랑을 볼 때 부터 잘 어울릴거라는 생각을 해왔었으니까 말이다.

순정만화 영화도 좋았다. 또다른 강풀 만화가 원작인 영화 바보의 경우 원작을 99% 따라가느라 이야기가 너무 함축되었고, 또한 스토리에서 전해져 오는 감동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 기가 힘들어져 버렸었다.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이란걸 빤히 알고 식스센스를 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반면 버릴 부분은 과감히 버리고, 살릴 부분을 살리며 각색한 영화 버전의 순정만화는 그래서 조금 더 부담없이 감상하기에 좋았고, 다음에 무슨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미래를 내다 보듯 머리속에 장면이 그려지는 그런 일은 없었다.
특히나 순정만화의 영화화 이야기가 나돌기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강풀 만화 특유의 내면 독백들을 어찌 표현될까 우려 했었다. 그런 표현하기 복잡하고 분량또한 방대한 내면의 나레이션들을 인물들간의 외적 갈등과 각색하며 나타난 새로운 아이템, 캐릭터들을 통해 상당히 효과적으로 그려낸 점은 참 마음에 들었다.
물론 그로인해 원작과는 달리 전체적인 내용이 가벼워진 부분은 있다. 원작의 깊은 복선들과 얼키고 설킨 인간관계, 그리고 그런 캐릭터들의 내면세계는 조명해내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워낙에 원작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많은 만큼, 시나리오 만화라 불리기는 하지만 그대로 영화화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것이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순정만화는 원작이 독자들에게 주었던 느낌을 잘 갈무리하고, 또한 새롭게 갈고닦아서 관객들에게 내놓는데는 분명 성공한 것 같다.

# by | 2009/01/26 09:37 | -영화 | 트랙백(1)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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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 감상 썼는줄 알았습니다...;;-_-
스케일도 크고 드라마에 정말 어울릴만한 이야기들이라서요.
그대를 사랑합니다 제작이 무산되었다는 이야기도 그래서 상당히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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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실은...
현실은....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