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8일
Les Miserables the movie
톰 후퍼는 빅토르 위고 원작의 레 미제라블을 영화화 하고 싶어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뮤지컬 레 미제라블은 원작을 영화화 하기 위한 좋은 도구로 보였던 것 같다. 나에게 필요 이상의 기대와 설렘을 가지게 했던 뮤지컬의 영화화 소식은 그 기대감 때문에 영화 개봉 전에 영국으로 날아가 뮤지컬까지 보고 오게 만들었지만, 차라리 뮤지컬을 보지 말았어야 했다는 실망감, 혹은 뮤지컬을 보지 못하고 보았다면 이 영화가 좋은 영화라 착각할 수 도 있었다는 공포감을 가지게 만들었다.
뮤지컬의 영화화 소식이 들리기 몇년 전부터 나는 레 미제라블의 영화화에 회의적이었다. 오페라의 유령이나 시카고 같은 작품들은 벌써 예전에 영화화 되었지만 레 미제라블은 그 인지도에 비해서 한참동안 영화화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 이유를 레 미제라블 원작의 방대한 스케일과 그 스케일을 무대위로 옮기면서 노래 가사들이 가지게 된 함축성에서 찾았다. 가장 명백한 예로 레 미제라블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One day more를 들 수 있겠다. 레 미제라블의 다양한 캐릭터들의 갈등과 고뇌가 별다른 무대장치도 없이 한 무대위에 선 배우들의노래와 하모니로 갈무리되는 이 멋진 장면은 오직 뮤지컬이기에 가능한 무대였고 나는 장면을 어떻게 스크린 위로 옮겨야 할 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내가 레 미제라블의 영화화 소식을 듣고 설레였던 이유의 팔할은 이 장면을 대체 어떻게 표현해 낼 것인가 하는 궁금증에서 기인했다. 하지만 길고긴 기다림 끝에 내 눈에 들어온 영화 속의 One day more은 언제인가 봤던 학예회 버전의 조잡한 one day more의 무대가 줬었던 감동조차 주지 못한 채 그냥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그 장면 하나만들 위해 전제적인 구성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할 것인지,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것이 적합할 것인지 고민했던 내 자신이 바보같아 보일 정도로 뻔뻔한 교차 편집으로 말이다.
이문열이 삼국지 평역의 자문을 구하기 위해 대만을 방문 했을 때 관공 미화와 촉한 정통론을 제외하면 삼국지가 아닌 다른 작품이 되어버린다는 충고를 들었다고 한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에포닌은 어떻게 보면 삼국지의 관우와 같은 캐릭터이다. 원작에서라면 그리 비중이 크지 않은 캐릭터였던 에포닌이지만, 뮤지컬에서는 팡틴과 함께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그려졌다. 그런 이유에서 피날레에서 팡틴과 함께 장발장을 맞이하는 캐릭터로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장발장에게 쪽지를 전해주는 캐릭터를 가브로쉬로 바꾸어버려 에포닌이 마리우스를 위해 바리케이트로 돌아오는 장면이 사라졌을 때에는 원작을 따라가기 위해 그런 것이라 이해하려고 애썼지만, 피날레에서 팡틴 옆에 서 있어야 할 에포닌이 사라졌을 때는 더 이상 이해할 수 가 없었다. 이 영화는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영화화가 아닌 다른 어떤 작품이 되고야 말았으니까.
톰 후퍼가 어떠한 레 미제라블을 그리고 싶었는지는 머리속에 확실히 그려진다. 주인공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뮤지컬 레 미제라블에서의 장 발장은 관찰자에 가깝다. 20여년의 고생이 있었지만 그는 행복한 삶을 살았으니까. 그래서 뮤지컬 레 미제라블은 전반의 팡틴과 후반의 에포닌의 절박함에 초점을 맞춘 채 이야기를 끌어가는 작품이 되었다. 레 미제라블을 대표하는 두개의 넘버가 팡틴의 I Deamed a dream 그리고 에포닌의 On my own이라는 사실은 이 두 캐릭터의 이야기가 관객들의 마음에 가장 크게 자리잡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도 있다. 반면 톰 후퍼는 빅토르 위고의 원전을 좀 더 사실적으로 따라가고 싶은 것과 동시에 장 발장을 이야기의 주역으로 재등장 시키고 싶어한 것 같다. 그래서 One day mroe을 기준으로 1막과 2막이 갈리던 뮤지컬과는 다르게 영화는 자베르의 star를 기준으로 전반과 후반이 갈리게 되었다. 그리고 장 발장과 그의 안티테제 자베르에게 초점이 맞춰진 채 진행되는 이야기는 미리엘 주교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팡틴을 구원하지 못했던 장발장이 마리우스를 구함으로 팡틴의 딸에게 행복을 찾아주며 마침내 구원을 받는 이야기를 대립적으로 보여준다. 아카데미 감독상 받은 감독 답다 싶을 정도로 괜찮은 구성이었지만 이러한 재해석 또한 뮤지컬의 가사와 구성에는 들어맞지 못해 헐렁한 옷을 입은 아이처럼 어색했다.
헐리우드 자본으로 헐리우드의 천문학적인 몸값이 드는 배우들을 써버린데서 탈이 난건지도 모른다. 팡틴의 앤 해서웨이는 연기 자체는 훌륭했을지언정 영화 전체의 균형을 무너뜨릴 정도로 존재감이 컸으며 덕분에 후반의 주인공이었어야 할 에포닌의 역할이 사라지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국에서는 대선의 결과와 맞물려 레 미제라블의 혁명 소재가 힐링의 소스가 되고 있는 것 같지만. 장 발장의 고뇌를 그리기 위해 Drink with me 같은 넘버를 반쪽내 버리고, 피날레에서 장발장의 구원을 강조해 버리는 작품에서 혁명으로 스러져간 이들의 비화를 추억하기는 힘들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내가 듣고 보았던 작품이 무언가 다른 것이 되어 보여진 실망감은 너무 컸다. 영화화된 레미제라블이 나쁜 작품이라고 말할 수 는 없다. 분명 감독이 하고자 했던 말들은 똑똑하게 들렸으니까, 하지만 이미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 뮤지컬을 영화라는 작품의 또다른 메세지를 전하기위해 사용한건 분명한 실수였다.
뮤지컬의 영화화 소식이 들리기 몇년 전부터 나는 레 미제라블의 영화화에 회의적이었다. 오페라의 유령이나 시카고 같은 작품들은 벌써 예전에 영화화 되었지만 레 미제라블은 그 인지도에 비해서 한참동안 영화화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 이유를 레 미제라블 원작의 방대한 스케일과 그 스케일을 무대위로 옮기면서 노래 가사들이 가지게 된 함축성에서 찾았다. 가장 명백한 예로 레 미제라블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One day more를 들 수 있겠다. 레 미제라블의 다양한 캐릭터들의 갈등과 고뇌가 별다른 무대장치도 없이 한 무대위에 선 배우들의노래와 하모니로 갈무리되는 이 멋진 장면은 오직 뮤지컬이기에 가능한 무대였고 나는 장면을 어떻게 스크린 위로 옮겨야 할 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내가 레 미제라블의 영화화 소식을 듣고 설레였던 이유의 팔할은 이 장면을 대체 어떻게 표현해 낼 것인가 하는 궁금증에서 기인했다. 하지만 길고긴 기다림 끝에 내 눈에 들어온 영화 속의 One day more은 언제인가 봤던 학예회 버전의 조잡한 one day more의 무대가 줬었던 감동조차 주지 못한 채 그냥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그 장면 하나만들 위해 전제적인 구성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할 것인지,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것이 적합할 것인지 고민했던 내 자신이 바보같아 보일 정도로 뻔뻔한 교차 편집으로 말이다.
이문열이 삼국지 평역의 자문을 구하기 위해 대만을 방문 했을 때 관공 미화와 촉한 정통론을 제외하면 삼국지가 아닌 다른 작품이 되어버린다는 충고를 들었다고 한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에포닌은 어떻게 보면 삼국지의 관우와 같은 캐릭터이다. 원작에서라면 그리 비중이 크지 않은 캐릭터였던 에포닌이지만, 뮤지컬에서는 팡틴과 함께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그려졌다. 그런 이유에서 피날레에서 팡틴과 함께 장발장을 맞이하는 캐릭터로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장발장에게 쪽지를 전해주는 캐릭터를 가브로쉬로 바꾸어버려 에포닌이 마리우스를 위해 바리케이트로 돌아오는 장면이 사라졌을 때에는 원작을 따라가기 위해 그런 것이라 이해하려고 애썼지만, 피날레에서 팡틴 옆에 서 있어야 할 에포닌이 사라졌을 때는 더 이상 이해할 수 가 없었다. 이 영화는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영화화가 아닌 다른 어떤 작품이 되고야 말았으니까.
톰 후퍼가 어떠한 레 미제라블을 그리고 싶었는지는 머리속에 확실히 그려진다. 주인공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뮤지컬 레 미제라블에서의 장 발장은 관찰자에 가깝다. 20여년의 고생이 있었지만 그는 행복한 삶을 살았으니까. 그래서 뮤지컬 레 미제라블은 전반의 팡틴과 후반의 에포닌의 절박함에 초점을 맞춘 채 이야기를 끌어가는 작품이 되었다. 레 미제라블을 대표하는 두개의 넘버가 팡틴의 I Deamed a dream 그리고 에포닌의 On my own이라는 사실은 이 두 캐릭터의 이야기가 관객들의 마음에 가장 크게 자리잡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도 있다. 반면 톰 후퍼는 빅토르 위고의 원전을 좀 더 사실적으로 따라가고 싶은 것과 동시에 장 발장을 이야기의 주역으로 재등장 시키고 싶어한 것 같다. 그래서 One day mroe을 기준으로 1막과 2막이 갈리던 뮤지컬과는 다르게 영화는 자베르의 star를 기준으로 전반과 후반이 갈리게 되었다. 그리고 장 발장과 그의 안티테제 자베르에게 초점이 맞춰진 채 진행되는 이야기는 미리엘 주교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팡틴을 구원하지 못했던 장발장이 마리우스를 구함으로 팡틴의 딸에게 행복을 찾아주며 마침내 구원을 받는 이야기를 대립적으로 보여준다. 아카데미 감독상 받은 감독 답다 싶을 정도로 괜찮은 구성이었지만 이러한 재해석 또한 뮤지컬의 가사와 구성에는 들어맞지 못해 헐렁한 옷을 입은 아이처럼 어색했다.
헐리우드 자본으로 헐리우드의 천문학적인 몸값이 드는 배우들을 써버린데서 탈이 난건지도 모른다. 팡틴의 앤 해서웨이는 연기 자체는 훌륭했을지언정 영화 전체의 균형을 무너뜨릴 정도로 존재감이 컸으며 덕분에 후반의 주인공이었어야 할 에포닌의 역할이 사라지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국에서는 대선의 결과와 맞물려 레 미제라블의 혁명 소재가 힐링의 소스가 되고 있는 것 같지만. 장 발장의 고뇌를 그리기 위해 Drink with me 같은 넘버를 반쪽내 버리고, 피날레에서 장발장의 구원을 강조해 버리는 작품에서 혁명으로 스러져간 이들의 비화를 추억하기는 힘들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내가 듣고 보았던 작품이 무언가 다른 것이 되어 보여진 실망감은 너무 컸다. 영화화된 레미제라블이 나쁜 작품이라고 말할 수 는 없다. 분명 감독이 하고자 했던 말들은 똑똑하게 들렸으니까, 하지만 이미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 뮤지컬을 영화라는 작품의 또다른 메세지를 전하기위해 사용한건 분명한 실수였다.
# by | 2012/12/28 11:57 | -영화 | 트랙백(1)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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