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 Miserables the movie

톰 후퍼는 빅토르 위고 원작의 레 미제라블을 영화화 하고 싶어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뮤지컬 레 미제라블은 원작을 영화화 하기 위한 좋은 도구로 보였던 것 같다. 나에게 필요 이상의 기대와 설렘을 가지게 했던 뮤지컬의 영화화 소식은 그 기대감 때문에 영화 개봉 전에 영국으로 날아가 뮤지컬까지 보고 오게 만들었지만, 차라리 뮤지컬을 보지 말았어야 했다는 실망감, 혹은 뮤지컬을 보지 못하고 보았다면 이 영화가 좋은 영화라 착각할 수 도 있었다는 공포감을 가지게 만들었다.

뮤지컬의 영화화 소식이 들리기 몇년 전부터 나는 레 미제라블의 영화화에 회의적이었다. 오페라의 유령이나 시카고 같은 작품들은 벌써 예전에 영화화 되었지만 레 미제라블은 그 인지도에 비해서 한참동안 영화화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 이유를 레 미제라블 원작의 방대한 스케일과 그 스케일을 무대위로 옮기면서 노래 가사들이 가지게 된 함축성에서 찾았다. 가장 명백한 예로 레 미제라블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One day more를 들 수 있겠다. 레 미제라블의 다양한 캐릭터들의 갈등과 고뇌가 별다른 무대장치도 없이 한 무대위에 선 배우들의노래와 하모니로 갈무리되는 이 멋진 장면은 오직 뮤지컬이기에 가능한 무대였고 나는  장면을 어떻게 스크린 위로 옮겨야 할 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내가 레 미제라블의 영화화 소식을 듣고 설레였던 이유의 팔할은 이 장면을 대체 어떻게 표현해 낼 것인가 하는 궁금증에서 기인했다. 하지만 길고긴 기다림 끝에 내 눈에 들어온 영화 속의 One day more은 언제인가 봤던 학예회 버전의 조잡한 one day more의 무대가 줬었던 감동조차 주지 못한 채 그냥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그 장면 하나만들 위해 전제적인 구성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할 것인지,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것이 적합할 것인지 고민했던 내 자신이 바보같아 보일 정도로 뻔뻔한 교차 편집으로 말이다.

이문열이 삼국지 평역의 자문을 구하기 위해 대만을 방문 했을 때 관공 미화와 촉한 정통론을 제외하면 삼국지가 아닌 다른 작품이 되어버린다는 충고를 들었다고 한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에포닌은 어떻게 보면 삼국지의 관우와 같은 캐릭터이다. 원작에서라면 그리 비중이 크지 않은 캐릭터였던 에포닌이지만, 뮤지컬에서는 팡틴과 함께 비참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그려졌다. 그런 이유에서 피날레에서 팡틴과 함께 장발장을 맞이하는 캐릭터로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장발장에게 쪽지를 전해주는 캐릭터를 가브로쉬로 바꾸어버려 에포닌이 마리우스를 위해 바리케이트로 돌아오는 장면이 사라졌을 때에는 원작을 따라가기 위해 그런 것이라 이해하려고 애썼지만, 피날레에서 팡틴 옆에 서 있어야 할 에포닌이 사라졌을 때는 더 이상 이해할 수 가 없었다. 이 영화는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영화화가 아닌 다른 어떤 작품이 되고야 말았으니까.

톰 후퍼가 어떠한 레 미제라블을 그리고 싶었는지는 머리속에 확실히 그려진다. 주인공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뮤지컬 레 미제라블에서의 장 발장은 관찰자에 가깝다. 20여년의 고생이 있었지만 그는 행복한 삶을 살았으니까. 그래서 뮤지컬 레 미제라블은 전반의 팡틴과 후반의 에포닌의 절박함에 초점을 맞춘 채 이야기를 끌어가는 작품이 되었다. 레 미제라블을 대표하는 두개의 넘버가 팡틴의 I Deamed a dream 그리고 에포닌의 On my own이라는 사실은 이 두 캐릭터의 이야기가 관객들의 마음에 가장 크게 자리잡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도 있다. 반면 톰 후퍼는 빅토르 위고의 원전을 좀 더 사실적으로 따라가고 싶은 것과 동시에 장 발장을 이야기의 주역으로 재등장 시키고 싶어한 것 같다. 그래서 One day mroe을 기준으로 1막과 2막이 갈리던 뮤지컬과는 다르게 영화는 자베르의 star를 기준으로 전반과 후반이 갈리게 되었다. 그리고 장 발장과 그의 안티테제 자베르에게 초점이 맞춰진 채 진행되는 이야기는 미리엘 주교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팡틴을 구원하지 못했던 장발장이 마리우스를 구함으로 팡틴의 딸에게 행복을 찾아주며 마침내 구원을 받는 이야기를 대립적으로 보여준다. 아카데미 감독상 받은 감독 답다 싶을 정도로 괜찮은 구성이었지만 이러한 재해석 또한 뮤지컬의 가사와 구성에는 들어맞지 못해 헐렁한 옷을 입은 아이처럼 어색했다.

헐리우드 자본으로 헐리우드의 천문학적인 몸값이 드는 배우들을 써버린데서 탈이 난건지도 모른다. 팡틴의 앤 해서웨이는 연기 자체는 훌륭했을지언정 영화 전체의 균형을 무너뜨릴 정도로 존재감이 컸으며 덕분에 후반의 주인공이었어야 할 에포닌의 역할이 사라지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국에서는 대선의 결과와 맞물려 레 미제라블의 혁명 소재가 힐링의 소스가 되고 있는 것 같지만. 장 발장의 고뇌를 그리기 위해 Drink with me 같은 넘버를 반쪽내 버리고, 피날레에서 장발장의 구원을 강조해 버리는 작품에서 혁명으로 스러져간 이들의 비화를 추억하기는 힘들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내가 듣고 보았던 작품이 무언가 다른 것이 되어 보여진 실망감은 너무 컸다. 영화화된 레미제라블이 나쁜 작품이라고 말할 수 는 없다. 분명 감독이 하고자 했던 말들은 똑똑하게 들렸으니까, 하지만 이미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 뮤지컬을 영화라는 작품의 또다른 메세지를 전하기위해 사용한건 분명한 실수였다.

by 단수 | 2012/12/28 11:57 | -영화 | 트랙백(1) | 덧글(1)

타블로가 잘못한 것

 연초에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기가 차서 말이 안나왔던 적이 있다. 강심장에 나왔던 홍석천 씨가 자신이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의 16강 진출의 숨은 공헌자 라고 주장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였다. 그는 자신이 한국과 포르투칼과의 경기 전날 포르투칼의 주요 선수들과 술자리를 했고 그들이 숙취 때문에 100%의 경기력을 보이지 못했다고 이야기 했다. 사실이어도 거짓이어도 큰 논란거리가 될 이 이야기를 홍석천씨는 자랑스러운 듯이 이야기 했다. 사실이었다면 월트컵 16강을 결정짓는 큰 경기를 앞두고 일탈행위를 벌인 포루투칼 선수들의 입장이 곤란해질 수 도 있는 이야기인 것이고, 거짓이라면 홍석천씨는 한번의 웃음을 얻기위해 너무나도 큰 대가를 치른 것이 될 것이 될 텐데 말이다. 결과적으로 이 이야기는 인터넷에서 잠시간 화제가 되었을 뿐 상당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무엇이 어찌 되었다는 뒷 이야기를 듣지 못했으니 내가 생각했었던 만큼의 파급력은 없었던 듯 싶다. 하지만 사실이라고 믿기에는 조금 허황된 이야기였던 것 만큼은 사실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방송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들이 라디오에서 혹은 인터넷을 통해 알려진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마치 자신의 실제 경험인 양 이야기 한 뒤 원문의 출처가 밝혀지며 사과했다는 기사를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두번 쯤은 읽어 보았을 것이다. 홍석천씨의 이야기에 신빙성이 적어지는 이유도 이러한 배경을 뒤에 두고 있는 것일테고 말이다.
 그러면 타블로는 어떠한가. 타블로의 스탠포드 석사라는 학력은 그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마다 가장 큰 화제거리였다. 특히 타블로는 단순히 스탠포드에서 석사를 취득했다는 단순한 이야기 거리에서 더 나아가 대학 생활에서 있었던 재미난 에피소드들을 시청자들에게 공개하면서 사차원적인 성격과 기이한 삶을 가지고 살아온 자신의 캐릭터를 구축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그의 캐릭터에서 온 대중성과 친근함이 그가 속한 에픽하이의 인지도를 높이는데 지대한 도움을 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타블로 학력 논란의 초창기부터 이미 타블로가 스탠포드 학생이었음을 믿고 있었다. 미국에 살고 있는데다 스탠포드 근처에서 학교를 다녔었다는 점 때문에 이미 그러한 논란이 있기 전부터 친구의 친구가 타블로랑 같이 학교를 다녔다더라 하는 식의 카더라 통신을 적잖이 접해왔기 때문이다. (아 물론 그 사실을 증명할 수 없기는 하다.)
 그런데 이렇게 타블로의 스탠포드 재학 사실을 인정하고, 그 시기를 정확하게 규명 했을 때 타블로가 자신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발언했던 사실들이 모순이 되 버리는 사태가 발생한다. 타블로가 예능에서 주장했다고 하는 몇몇 사실들, 예를 들면 클린턴 전 대통령의 딸 첼시에게 장난을 쳐서 경호원들의 추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나 리즈 위더스푼과 함께 대학을 다녔다, 사정봉과 함께 퇴학을 당했다는 식의 발언들은 시기상 겹칠 수 없게 되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부정되게 된다. 이러한 한 개인이 일생동안 격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 허황되어 있을 수 없다고 생각되어지는 일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타블로는 적어도 이 사실에 대해서는 정확히 설명을 하고, 필요하다면 거짓이었음을 인정, 시청자들에게 사과해야 할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타블로의 학력 논란을 이렇게 까지 크게 부풀게 된 이유가 타블로 자신의 허풍, 혹은 기적같은 진실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학력 논란이라는 큰 땔감에 잔가지들이 계속해서 공급되면서 논란의 불씨를 크게 점화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논란의 불씨가 활활 타오른 지금에서는 논란 자체가 학력 그 자체에만 집중되고 그것을 있게 했던 자잘한 디테일들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타진요나 상진세 같이 타블로에게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단체들은 타블로의 이미 거의 입증이 된 학력 자체에만 관심을 집중하고 있고 얼마전 방송된 MBC 스페셜의 경우에도 정작 설명되어야 할 타블로의 다른 주장들은 완전히 무시 된 채 타블로의 학력을 입증하는데만 방송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만약 타블로의 학력을 인정할 경우 거의 확실하게 타블로가 거짓 주장을 했음이 분명한 부분들이 논란거리로 떠오르게 된다는 사실은 보지 못하고 말이다.
 내가 보기에 타블로가 잘못한 것은 다른 많은 연예인들이 그러하듯 예능을 위해 자신의 배경을 너무 크게 부풀려 허황된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예능의 트렌드 이자, 웃기기 위한 소재가 한정된 상황에서 예능 제작자들이 어쩔 수 없이 택하게 되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일 수 도 있다. 다만 자신이 격지 않은 일을 사실이라 이야기 한다는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일이고, 때문에 언제고간에 논란의 대상일 될 수 밖에 없다. 나는 그래서 타블로가 자신이 한 이야기가 사실이 아님을 인정하고 그에 대해 사과를 한다면 현재 일고 있는 논란이 빠른 시간안에 종식될 것으로 본다. 이미 그의 학력이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는 마당에 그 사실을 부정하고 있는 사람들이 잠시 관심을 잃은 이런 자잘한 문제들을 정리한다면 밑밥 없는 낚시꾼 마냥 떡밥이 아무리 커도 소용 없게 되버릴 테니 말이다.


by 단수 | 2010/10/05 13:50 | 자유게시판 | 트랙백 | 덧글(8)

사과문

안녕하세요. 메이저 블로거일 뻔 한 단수입니다.

아래의 포스팅을 보시면 이해하시겠지만 저는 타진요 카페에서 타블로에게 학력 인증을 위해 요구하는 사항들과 그에 이르는 논리를 저에게 적용해본 바 저의 존재를 도저히 증명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블로거 단수는 미국에 입국했음을 증명할 수 없고, 미국에서 대학을 다녔음을 증명할 수 없고, 미국에서 군대를 다녀왔음을 증명할 수 없고, 미국 시민권자라고 주장하는 단수가 미국 시민권을 받기 전의 단수와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블로그에 올라온 모든 글들, 특히 미국 시민권을 받기 이전에 올려진 포스팅들은 허구일 가능성이 몹시 높으며, 단수가 요리했다고 찍어 올린 음식 사진들과 단수가 반려동물이라고 주장하는 고양이 하모의 사진 등은 존재 하지 않았던 조작된 사실들이었습니다. 

블로거 단수는 본인의 존재 조차 불확실한 상황에서 자신의 실생활이라 짐작되어진 허구들을 블로그에 올려 블로그를 찾아주신 분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 바 양심의 가책을 느껴 지금까지 블로그를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by 단수 | 2010/10/04 18:25 | 미분류 | 트랙백 | 핑백(1) | 덧글(36)

타진요에 의하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

타진요 카페에 들어가 보았는데 그 사람들이 타블로에게 요구하는 사항들을 보니까 제가 미국 사람이고 미국에서 대학이랑 군대를 다녀왔다는 사실을 증명할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타진요 메인 페이지 보니까 여권, 출입국 관리 기록, 비자, 에세이, 성적자료, 졸업앨범 사진, 성적 증명서등을 원하는데...

한국 여권 만기되고 미국 여권 발급 받았기 때문에 한국 여권에 대해 신경을 안써서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그래서 출입국 기록도 없구요.

12학년(고3) 1학기 마치고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서 졸업 앨범에 사진도 없고, 졸업식 참석도 안했습니다. 먼저 다니던 학교 앨범에는 사진이 있는데 단체 사진에서는 빠져 있구요. 그나마도 다른 친구들은 이름 밑에 클럽 활동이라던가, 좋아하는 명언 같은것들 적어 놓는데 저는 그때 그 학교에 없어서 사진이랑 이름만 덩그러니, 누가 조작 했다고 그래도 할말 없네요.

제 이름은 영어로 네가지 다른 방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학교에서, 군대에서, 군 제대 후 편입한 대학에서 쓴 이름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이름이 전부 다릅니다.

대학 입학 에세이 따위는 뭐라고 썼는지 기억조차 안나고, 1년 다니다 군대다녀오고 다른 학교로 편입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먼저 학교 학생계정은 완전히 잊어버려서 지금 로그인해서 인증하라 그래도 할 수 도 없음

성적 증명서 발부 받는건 다른 시스템이라 "간단한" 개인정보만 확인하면 성적 증명서를 발부해 주지만 증명서를 받아도 지금 쓰는 제 이름이 아닙니다.

군대는 해군으로 입대 했지만, 해병대 부대에 배치 받아서 해병대 군복 입고 군 복무 했습니다. 이건 정말 해병대 사칭, 혹은 해군 소속을 부정 하는거 아니냐 하는 논란이 발생랑 수 있는 엄청난 떡밥...

아니, 일단 이 모든 일이 있고나서 시민권 받고 이름을 미국식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신용정보 회사에서도 헷갈려 했을 정도로 카오스 그 자체였는데요. 제가 타블로씨와 비슷한 상황에 빠졌다면 도저히 제 존재를 증명할 자신이 없네요. 대학교와 군대 생활을 담은 사진들과 그 사실을 증명해줄 사람들이 있지만 그거야 당연히 전부 조작일테고, 위에서 말하는 모든 사항들을 정확히 공개하기 전에는 저는 없는 사람인 거잖아요.

이거 급 우울해지네요.

by 단수 | 2010/10/04 18:06 | 자유게시판 | 트랙백 | 핑백(1) | 덧글(1)

블루 크랩(Blue Crab)을 아시나요~~

 때는 바야흐로 몇년 전인가... 군대도 가기 전이었던 그나마 조금 덜 늙어보였었던 저는 친구들 몇명과 미국 동부를 가로 지르는 별로 역사적이지는 않았던 여행을 하게 됩니다. 뉴욕-보스턴-버팔로(나이아가라폭포)-버지니아(루레이동굴)-워싱턴을 돌아 다시 뉴욕에 이르는 장장 2100마일에 이르는 일단은 대장정이었습니다만 이 실속없는 여정은 별로 중요한게 아니고, 워싱턴 DC의 관광을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오기 전 잠시 삼천포로 빠졌다가 정말로 바다속에 빠져버릴 뻔 한 이야기가 오늘의 주제가 되겠습니다.
 보통 동부 여행 하면, 위에서 짚은 웨이 포인트들을 찍으며 돌아다니는게 정석입니다. 이런 정석에 알바니라던가, 버지니아 비치 라던가 필라델피아 라던가, 아틀란틱 시티라던가 하는 크고 작은 포인트들이 추가 될 수 있지만 거의 무조건 배제되어 사람들이 자동차로 지나갔다는 사실조차도 감지하게 않게 되는 가슴아픈 주(state)가 있는데요. 바로 델라웨어주 입니다. 워싱턴 디씨의 동쪽 메릴랜드 주와 펜실바니아주 사이에 생뚱맡게 끼어있는 작은 반도의 절반에 걸쳐있는 작은 주가 바로 델라웨어죠. 바로 근처에 필라델피아와 볼티모어라는 대도시가 자리잡고 있는데도 농지가 대부분에, 인구밀도 또한 한없이 낮은 곳인데요. 덕분에 물가도 너무나도 낮아서 뉴욕에서 8불에 담배 한갑을 사고 남쪽을 향해 달리던 운전자가 담배가 떨어져 들른 주유소에서 담배를 사니 4불도 안하더라, 이곳이 천국이요 물어보니 주유소 직원이 이곳이 바로 델라웨어라 대답했다는 안 믿으셔도 되는 전설도 존재합니다.
 하여간에 반도라는 지리적 특성상 워싱턴, 볼티모어, 필라델피아, 뉴욕으로 이어지는 대도시 라인과 도시들을 잇는 고속로도망에서 간발의 차로 빗겨나가는 덕에 델라웨어의 도시들은 완전 듣보잡이 되고 말았습니다. 딱히 유명한 볼거리도 없기에 여행자들이 애써 찾아갈 만한 곳 도 아니구요. 그런 하찮음을 무릎쓰고 저의 일행들은 여행 중 델라웨어를 찾게 되었는데요. 일행중에 델라웨어에서 태어난 친구가 있어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태어나기만 하고 자라기는 다른곳에서 자랐지만 그래도 갓난뱅이 시절을 보냈던 곳을 한번 찾아보고 싶은 법 아니겠습니까. 저희들은 그 친구가 태어난 델라웨어의 어느 동네에 가서 그 친구가 추억에 잠기는 걸 감상하게 되었고, 친구의 부모님께 생가에 도착했다 보고를 드린 순간 저희들은 새로운 미션을 하달 받았습니다. -델라웨어에는 블루크랩이란게 있는데 무척 맛있으니 꼭 먹어보고 올 것!
 아무도 몰랐습니다. 블루 크랩이 무언지. 이름이 블루 크랩이니 파란색 나는 게일 거라는 건 알았습니다. 파란색 게라니! 이름만 들어도 신기했지요. 친구의 부모님께서 꼭 먹고오라 추천을 하셨으니 맛도 있겠지요. 딱히 델라웨어에서 할일도 없었기에 블루 크랩을 먹자는 데 의견일치를 보았습니다. 문제는 블루 크랩을 어디서 파느냐 였지요. 일단 근처의 큰 동네 시내로 나가보았습니다. 여러 레스토랑들이 줄줄히 간판을 달고 있었지만 crab만을 팔 뿐 Blue Crab을 판다는 간판은 찾을 수 가 없었습니다. 시내에 나가면 즐비하다는 친구 부모님의 말씀이 무색하게 십년이 넘은 델라웨어엔 강산이 변하는 동안 블루 크랩이 씨가 마른 듯 했습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어찌하면 블루 크랩을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해보던 저희는 한가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 우리들이 지금 델라웨어 북쪽에 있으니까. 블루 크랩이 델라웨어 특산물이면 남쪽의 주도 근처에 가면 확실히 찾을 수 있을거야." 그래서 저희들은 남하를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또 다른 사실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한국도 왜 해안도로 따라가면 횟집들 열라 많잖아. 델라웨어도 해안도로 따라 내려가면 가는 중에 레스토랑 있지 않을까?" 그래서 저희들은 델라웨어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주도인 도버까지 주욱 이어지는 1번 국도를 포기하고, 대서양변을 따라 뻗어있다고 생각했던 9번 지방도를 타게 됩니다. 블루 크랩 간판이 붙은 레스토랑을 찾아 눈에 불을 켜고 9번 도로에 들어섰을 때 해는 이미 져버리고 삭막한 어둠이 도로 왼편의 대서양을 집어 삼켰습니다. 어둠이 점점 깊어지고, 9번 지방도 안쪽으로 점점 깊숙히 잠입함에 따라 레스토랑의 흔적은 찾을 길 도 없이 인가조차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저희들을 무성한 갈대숲 사이로 황량하게 뻗어있는 길을 어둠속에서 홀로 달리고 있었지요. 그 순간
"첨벙!"
급격히 속력을 줄였지만 그래도 꽤나 빠른 속도로 자동차가 앞바퀴가 물살을 헤집었습니다. 길 일부분이 침수되서 유실되었어!!! 밀물인건지, 길이 무너진건지 알 수 는 없지만 구불구불 이어지던 길 위로 바닷물이 흥건하게 올라와 있었습니다. 자칫 잘못했으면 엔진에까지 물이 찰 수 도 있었던 아찔한 상황이었지요. 레스토랑은 커녕 인가조차 없는 이 지방도는 계속해서 이런식으로 이어졌고,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코너를 돌 때마다 바퀴 깊숙이 물이 차오르는 웅덩이가 여기 저기 널려있는 이 열악한 도로 위를 달리기란 너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어차피 레스토랑을 기대하는 것도 어불성설이었기에 저희들은 9번 지방도를 포기하고 널찍하게 뚤린 1번 국도를 타고 도버까지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도버에서도, 다음날 아침 뉴욕으로 돌아가기 위해 델라웨어를 북상하는 동안에도 블루 크랩을 파는 레스토랑은 찾을 수 없었고 블루 크랩의 정체는 영원한 미스테리로 남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수개월 후 여행을 마치고 멤버들은 뿔뿔히 흩어져 방학을 즐기고 있었고, 한국에 있던 저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던 다른 여행 멤버로부터 메일을 받게 됩니다. 편지엔 로스 엔젤레스에서 블루 크랩을 먹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델라웨어 특산 블루 크랩을 정 반대편인 캘리포니아에서 먹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 하지만 궁금증을 채 음미하기도 전에 이어진 내용은 좀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델라웨어에는 Blue Crab을 그냥 Crab이라고 쓰기 때문에 게를 파는 레스토랑 아무 곳에나 들어 갔어도 상관이 없었다는 사실을 친구놈은 자신은 이제 블루 크랩을 먹었다는 사실에 만족해 심드렁하게 써내려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암흑과 바닷물에 잠긴 도로 위를 달리며 언제 옆으로 빠질 지 몰라 조마조마했었던 기억이 생각났던 저는 그 사실을 애써 잊기 위해 메일을 닫았고, 블루 크랩의 악몽은 몇년간 저를 따라다니며 악몽의 소재가 되곤 했습니다.
 몇년 후 군에서 제대하고 어쩌다 보니 미국 동부의 조지아주에 떨어지게 된 저는 어느날 아무 생각 없이 찾은 한인 마트에서 몇년 전의 악몽과 잔인한 조우를 하게 됩니다. 마트의 수산물 매장에는 블루 크랩 특가 파운드당 얼마 사인이 커다랗게 걸려 있었고 그 밑의 스테인레스 박스 안에는 살아있는 게들이 무더기로 모여 손님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몇년 만에 그동안 저를 괴롭혀 왔던 블루 크랩이라는 게의 진정한 아이덴티티를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한발 한발 게들이 아우성치는 디스플레이 안으로 다가갔고 제 머리 속에서, 킹 크랩보다도, 소프트쉘 크랩 보다도, 머드 크랩보다도, 영덕 대게 보다도 더 유니크하고 럭셔리며, 졸라게 어려운 게임 끝판왕 같은 이미지로 각인되어 버린, 블루 크랩의 모습이 조금씩 선명해져 갔습니다.


네이버 사전:
blue crab
예문보기
(특히 미국 동해안산(産)의) 바다게 ((식용))

사진



그러니까 한마디로 꽃게


Crab 이었던 거죠.
 

by 단수 | 2010/02/06 13:55 | -음식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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