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07일
2009년 최고의 영화 - Precious: Based on the Novel Push by Sapphire

내가 사는 동네는 흑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이다 보니 동네 극장에서도 다른 지역에서는 구경도 못해볼 흑인 영화가 걸린다거나, 그런 영화가 일부 지역의 제한 상영으로 개봉하는 일이 생겼을 때 개봉지로 선택되는 일이 자주 있다. 물론 이 곳이 멀게는 사바나 항의 노예시장, 가깝게는 마틴 루터 킹으로 시작해 힙합음악의 중심지이자 타일러 페리의 프로덕션으로 대변되는 흑인문화의 중심지이자 수도라고 할 수 있는 조지아주 애틀란타이니만큼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반대로 말해보면, 결국 이곳에서만 개봉 하면 된다는 소리일 수 도 있다. 모든 흑인들은 애틀란타로 통하니 만큼, 애틀란타와 그 외 흑인 인구 비율이 높은 몇몇 대도시만 커버한다면 볼 사람은 다 보게 된다는 소리다. "볼 사람"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보게 된 이 영화는 겉으로 보기에는 타겟으로 하는 관객층이 딱 정해졌을 것 같은 영화였다. 바로 흑인 문화계의 두 거두 오프라 윈프리와 타일러 페리가 제작에 참여했다는 소식만으로 크게 이슈가 된 Precious: Based on the Novel Push by Sapphire다. 역시나 시카고와 애틀란타를 포함한 몇개의 대도시에서 제한 상영을 시작했는데, 내가 사는 곳 근처의 24개 상영관을 자랑하는 거대한 멀티플렉스에서도 개봉했다. 기대하고 있었던 영화이기에 조조로 한가롭게 보려 아침일찍 극장으로 향했것만 이게 왠걸, 커다란 극장의 제일 큰 상영관이 만석이다. 그리고 하늘에 맹세하고, 부모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건데 동양인은 나 혼자였다. 금요일 오전에 한가하게 시간을 죽이러 온 백인 할아버지, 할머니가 몇쌍 있었긴 했지만 거대한 상영관의 대략 500석은 될 법한 좌석들은 전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 의해 차여져 있었다.
영화를 보고 온 주제에 영화 이야기는 시작도 하지 않고, 쓸데 없는 관객들 피부색 이야기만 하고 있는 이유는 사실 이 좋은 영화가 과연 얼마 만큼 미국과 세계의 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서이다. 이 영화가 관객과의 소통이 힘들 정도로 못만들어진 영화인가 하면 그것은 아니다. 머라이어 케리부터 시작해 모니크까지 주조연 배우들 모두의 강렬한 연기는 보는이들을 시종일관 압도한다. 소재의 신선함과 그 소재를 다루는 연출력과 그 연출로 하여금 감독이 관객에게 던지는 물음 또한 절대로 가벼이 다루어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을 나서며 나는 이 물음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 과연 이 영화는 한국이나 일본에서 개봉하여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것인가, 아니 아시아는 고사하고 미국 전역으로 확대 개봉 하였을 때 과연 이슈화 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었다.
Precious는 오프라 윈프리라는 더이상 좋을 수 없는 든든한 지원군을 등에 업었고, 영화 자체 또한 훌륭하지만 몇 주 전 개봉되었던 비슷한 성질의 영화 한편이 생각이 나 나는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회의적이 되어 버렸다. 몇주전 개봉했던 크리스 락의 다큐멘터리 영화 '굿 헤어', 정말 재밌게 본 영화였다. 굿 헤어 또한 애틀란타를 비롯한 대도시 몇군데에서 제한상영으로 시작해 입소문을 타고 확대개봉을 한 작품이다. 단순히 입만 더러운 코메디언이라는 선입견이 강했던 크리스 락에대한 재발견이라는 찬사와 함께 흑인들의 머리가 던지는 그들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비록 영화의 내용에 비판의 여지는 많지만, 양지로 끌어낸 좋은 작품이었다. 허나 이 작품은 500개도 못 미치는 극장에서 상영되었을 뿐이고, 350만불 정도의 흥행 수익을 내었을 뿐이다.
다큐멘터리 영화와 본격적인 극영화를 절대적으로 비교하는데는 무리가 있지만, 두 작품에는 커다란 공통점이 있다. 흑인 영화 라는 것. 흑인의 취향으로 만들어 졌다는 것.타일러 페리의 영화가 개봉만 하면 박스 오피스 1위를 당연하다는 듯이 할 때 한국에서는 도대체 타일러 페리는 누구인가 하는물음이 들려온다. 아니, 한국까지 갈 것 도 없이 타일러 페리의 영화 개봉상영관은 흑인인구 밀집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 전 세계가 마이클 잭슨의 죽음에 심각한 애도를 표할 때 할렘가의 흑인들은 그가 공연했던 극장 앞에 모여 마이클 잭슨의 노래에 몸을 맡긴 채 흥겹게 춤을 추며 그를 추모했다. 그 모습을 취재하던 CNN 기사의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 또한 생생하게 기억난다. Precious의 상영관 안의 유일한 동양인으로 다른 관객들이 극장안이 떠나가라 웃음을 터뜨릴 때 나 혼자 도대체 이 장면이 왜 웃긴건가 고민하며 그 장면의 심각함에 압도된 이유는 내 영어가 짧아서도, 미국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도 아니다. 애초에 웃음의 코드 자체가 다른 것이다. 그리고 흑인 이외의 그 누구도 흑인의 머리카락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않는 것처럼, Precious의 이야기도 흑인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관심의 대상에서 벗어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굿 헤어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마이클 무어의 캐피탈리즘이 천여개의 극장에서 개봉해 천삼백만불의 수익을 벌어 들였다. 이제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대목을 맞아 굵직한 홀리데이 영화들이 매주 하나둘씩 개봉해가는데 Precious는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것인가.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영화에 대해 말해보자면 전체적으로 잘 만들어진 영화이다. 영화는 제대로 읽고 쓰지도 못하고 고도 비만인데다 두번이나 친아버지의 아이를 임신하고, 친어머니에게 욕설과 폭력으로 학대당하는 16살의 흑인 소녀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숨김없이 보여준다. 쉴세없이 욕설이 난무하고, 폭력과 학대장면이 눈을 어지럽힌다. 이런 장면들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조금 자극적인 장면일 수 도 있다. 나 또한 너무나 과장된 액션들에 영화가 비현실적이다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영화는 너무나도 현실적이다. 요즘 뉴스와 신문의 헤드라인을 도배하는 기사들, 영화를 보다보면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는 그 기사의 내용들을 머리속으로 그려보다 다시 영화를 보면 비현실적이라는 핑계로 도피해버리던 영화속의 장면들은 정말 그랬을 법한 현실이 되어 다가온다. 그 가슴아픈 현실에 공감하며 영화를 다시 곱씹어 보면 또다른 충격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1987년이다. 22년 후의 사람이 22년 전의 이야기를 보며 완벽하게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은 22년간 전혀 변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 영화의 흥행 여부는 기우였는지도 모르겠는게, 사실 이미 굵직한 영화제에서 수상하고 오프라 윈프리의 로비에 힘입어 아카데미 후보로 강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이유는 단 하나다. 배우들의 연기력. 앞에서 말한데로 강렬한 소재와 흑인 영화라는 태생으로 인해 넓은 대중에게 다가가기엔 조금 힘들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영화가 끝나고 절로 박수로 경의를 표하게 만드는 배우들의 연기력은 이 영화를 근래에 보지못한 수작으로 만들었다. 배우경력이 전혀 없는데다 친구의 강요로 마지못해 오디션을 보았다 캐스팅 되었다는 여주인공 가브리 시디비, 히스 리저의 조커가 그려낸 광기와는 또 다른, 향할 데 없는 증오와 질투의 광기를 혼신의 힘을 다해 그려낸 코메디언 모니크, 그리고 그런 모습을 하고 출현했다는 것 만으로도 이 영화 최대의 스포일러 였던 머라이어 캐리의 절대 기대하지 못했던 호연까지, 보는이의 숨을 앗아가는 배우들의 멋진 연기들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제목 앞에 타일러 페리의 이름이 밖힌 채 흑인 동네의 상영관에서만 개봉되었다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쪼록 내가 허투르게 내뱉은 말들을 싸그리 무시하고, 작년의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그랬듯 좋은 성적을 냈으면 좋겠다.
# by | 2009/11/07 14:44 | -영화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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